세상의 계산법과 하나님의 계산법은 다릅니다. 세상은 공정이라는 잣대로 계산하지만, 하나님은 은혜의 계산법으로 대하십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공정입니다. 우리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능력만큼 대접받는 사회가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공정이라는 개념 뒤에는 능력주의와 실적주의가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우리가 말하는 능력주의는 정말 공정할까?” 여기에 대해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가 승자에게는 자기가 잘나서 얻은 능력의 결과라는 오만을 심어주고, 패자에게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굴욕감을 안겨준다고 하면서, 이러한 능력주의는 사회적 연대감을 깨뜨리고 병들게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고민의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가 오늘 읽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에 나옵니다. 이 비유는 포도원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인력 시장에 나가 품꾼을 데려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고용된 시간은 각각 다릅니다. 새벽 여섯 시부터 고용되어 일한 사람부터 오후 다섯 시에 고용되어 겨우 한 시간 일한 사람까지 다양합니다. 문제는 일을 마치고 품삯을 지급할 때 생겼습니다. 가장 늦게 들어와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이 지급되었습니다. 세상의 공정의 기준대로라면 한 시간 일한 사람과 열두 시간 동안 더위를 견디며 힘들게 일한 사람은 차등 지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포도원 주인의 지급 방식은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습니다. 모든 일꾼에게 동일하게 약속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급한 것입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에게 한 데나리온이 지급되는 것을 보고, 그보다는 더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열두 시간 일한 사람은 동일한 한 데나리온을 받고 분통을 터트리며 항의했습니다. 세상의 공정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이 품꾼의 항의는 지극히 정당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이 불평을 잠재웁니다. 이 본문은 세상의 공정과 하나님의 은혜라는 서로 다른 계산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1. 세상의 공정은 능력과 자격을 따지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필요를 채우십니다. - 인력시장에서 오후 다섯 시까지 채용되지 못했다면, 세상 기준으로 볼 때 능력과 자격이 미달된 자들입니다. 주인이 오후 다섯 시에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 놀고 여기 서 있느냐?”고 물어볼 때, 저들은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들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선택받지 못한 소외된 자, 탈락자들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자격과 능력, 스펙을 따지는 세상 기준으로 보면 쓸모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신 것은 그들에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정함의 능력과 자격에서 나오는 생산성을 보지 않고, 간절함과 필요를 보고 은혜로 채우셨습니다.
2. 내 공로에 갇히면 오만에 빠지고, 은혜를 깨달으면 감사가 넘칩니다. - 새벽 여섯 시부터 일한 사람의 원망은 “나중 온 사람은 한 시간만 일했거늘 온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들이 아무리 능력이 있고, 수고했다고 할지라도 주인이 선택해 주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초조함 가운데 기다려야 했을 것입니다. 은혜가 공로로 바뀌지 말아야 합니다.
3. 천국은 먼저 된 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나중 된 자와 함께 기뻐하는 곳입니다. - 이 비유의 핵심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될 수 있는 것이 천국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기득권과 자기 의를 내려놓아야 하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정보다 은혜가 작용하는 곳입니다. 은혜 앞에 다시 엎드리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