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공고에 보면 지원할 수 있는 자격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자격에 미달되는 사람은 서류전형에서 일단 탈락됩니다. 다른 부분에 아무리 뛰어난 실력이 있어도, 채용공고에 명시된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탈락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탈락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은 “결핍되다. 목표물에 미치지 못하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의 기준에 미달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스스로 우리가 구원받을 방법을 마련하셨고, 값없이 누리게 하셨습니다.
공짜라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나무나 중요한 것이기에 값을 매기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값을 매기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 대신 그 값을 지불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 누군가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 은혜를 아느냐 모르느냐의 문제이지, 은혜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갚을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대신 갚아주거나 탕감해 주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값비싼 대가로 얻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만족케 하며,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으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화목제물로 삼아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셨고, 이를 믿는 자를 값없이 의롭다 여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죄와 불의를 그냥 봐주고 눈 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을 통해 이루십니다.
1. 인간에 대한 절망적인 진단 – 인류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진보해왔다고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죄성은 점점 더 과감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율법 앞에 파산자처럼 구제불능의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기껏해야 죄를 죄로 깨달을 뿐, 아무도 의로워질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선행이나 도덕적 노력으로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점점 더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설명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스스로 구제할 수 없는 영적 파산자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2.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해법 – 경제적으로 파산한 자들에게 구제하는 길이 있듯이, 영적 파산자들에게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입니다. 2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속량(헬, 아폴뤼트로시스)은 고대 노예 시장에서 쓰이던 용어로 ‘몸값을 지불하고 노예를 해방시켜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속량함을 얻어 죄와 사망의 매임에서 벗어났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아들의 생명을 지불하고 산 것입니다. 그야말로 값비싼 대가로 얻은 값없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값없이 이루어진 것은 그것이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지불할 능력이 없을 만큼 너무 비싸기 때문입니다.
3. 결코 자랑할 수 없는 은혜 – 값없는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어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그래서 27절에 보면 우리는 구원받았다는 것을 자랑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자의 바른 태도는 자랑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