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된 축복’도 있지만, ‘축복으로 위장된 은밀한 유혹’도 있습니다. 변장된 축복이 고난의 얼굴로 찾아온 축복이라면, 위장된 유혹은 축복의 얼굴로 찾아온 유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아서는 본질을 놓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1) 내가 처한 상황은 무척 압박감을 느낄 만한 힘든 상황입니다. 2) 그래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3) 조금 찜찜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기회처럼 보이는 상황이 생깁니다. 4)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추깁니다. 이러한 네 가지 요소가 갖추어지면, 누구든 축복으로 위장된 은밀한 유혹을 떨쳐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처신했는가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축복으로 위장된 유혹을 분별하라 –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기가 막힌 기회입니다. 천우신조입니다. 기도의 응답 같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처럼 보입니다. 명분도 충분합니다. 사울이 먼저 죽이려 했으니 정당방위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이것이 기도의 응답이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부추깁니다. 이제 결단만 하면 그 지긋지긋한 도망자의 생활을 끝내고 당장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함께 고생한 이들의 고생도 끝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반드시 하나님의 응답인 것은 아닙니다. 사탄은 종종 우리의 복수심과 탐욕을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포장하여 유혹하며 다가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축복으로 위장된 유혹을 분별하는 훈련과 연습을 해야 합니다.
2. 영적 찔림에 민감하게 반응하라 – 분별하는 것이 이성의 영역이라면 영적 찔림에 반응하는 것은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의지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지금이 하나님이 원수를 넘기신 기회라는 부하들의 재촉에 다윗은 칼을 들고 사울에게 다가갑니다. 어둠 속에 다윗의 마음은 수만 가지 생각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결국, 사울의 옷자락만 살짝 베고 돌아옵니다. 사울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라는 것을 과시하고, 사울의 권위를 훼손하며 은밀한 복수심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다윗의 마음에 찔렸다고 했습니다. 때로, 마음 속에서 혈기가 올라오고, 감정이 휘몰아칠 때, 내 영혼을 강력하게 두드리시는 성령의 찔림에 반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3. 내 손의 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라 – 시험을 이기는 방법은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아 사울을 해치지 않은 다윗은 부하들에게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 어떤 변명이나 합리화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보다 우선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맡기느냐, 아니면 내 뜻과 마음을 따르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에게도 우리를 힘들게 괴롭히는 사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손에 칼을 쥐어줍니다. 그리고 지금이 기회라고 속삭입니다. 이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