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요즘 어떤 염려거리가 있으십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는 고민과 염려거리가 많습니다. 급변하는 세상을 따라가기도 벅차고, 불확실한 미래와 노후 대비,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마주하는 질병과 재난과 같은 생존의 염려는 우리 삶의 기본값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생각할수록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닥친 문제만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까지 미리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염려거리가 없던 시대는 없었습니다. 1세기 갈릴리 주변에 살고 있던 주민들도 로마의 압제와 무거운 세금 속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하는 고민은 사치스러운 고민이 아니라, 절박한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이렇게 절박한 삶의 한복판에 있는 자들에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염려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위하여, 몸을 위하여’라는 말씀은 생존을 위한 고민임을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은 염려거리가 많은 세상에서 염려를 멈출 수 있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염려의 원인, 염려의 무용론, 염려를 이기는 법을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주님의 제자들이 염려를 넘어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삶이 되길 원하십니다.
1. 염려를 극복하고 초월하라 – 염려와 고민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염려가 우리의 삶을 침식하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염려는 처음에는 건전한 고민이나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길 수 있지만, 이것을 관리하지 못하면 우리의 모든 생각에 퍼져 우리의 평안도, 그리고 우리의 믿음도 모두 허물어버립니다. 염려하지 말라는 것은 아무런 생각이나 대비 없이 무책임한 삶을 살라는 말이 아니라, 염려를 초월하라는 말씀입니다. 제자들 역시 주님을 따르면서 먹고 사는 문제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물질에 대한 염려를 초월하지 못하고, 염려에 매이게 되면 물질의 종이 되고, 사람의 종이 되기 쉽습니다.
2.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의 방향을 가지라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30절 말씀처럼, 우리에게 이런 것이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염려를 초월하고 극복하는 비결은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기 전에, “누가 나를 먹이시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기 전에, “누가 나를 입히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저들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니 혼자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있는 사람은 처음에 자기 힘으로 해보다가 안 되면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고민도 하고, 걱정도 하고, 이런저런 궁리도 하지만, 내 한계를 느끼면 그때부터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이게 우리와 세상 사람들과의 다른 점입니다.
3.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 단순히 염려를 없애려고 하지 말고, 염려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염려를 극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소유를 팔아 구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우리 염려의 뿌리에는 물질의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풍요롭게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염려를 극복하고 초월하여 믿음으로 살았던 소수의 제자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