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에게 이렇게 살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데, 정작 환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던 대로 그대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질병은 이상이 생기면서 금방 통증을 느끼고 자각증세도 있지만, 어떤 질병은 다 망가질 때까지 전혀 모르고 지낼 수 있기에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라고 하면서 건강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은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권위자는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문제의 본질과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때 맞이하게 될 재앙과 같은 미래를 예상하고 예견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도 이러한 번뇌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선지자의 번뇌는 자기 눈에는 보이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잘못과 죄악을 보여주시고, 그 결말은 심판당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나타나기 시작하고, 앞으로 나타날 상황은 필경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증상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상황을 경고하며 전하는데, 아무리 경고의 말씀을 전해도 백성들은 그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필경 심판받을 것을 알기에 열정을 다해 전하지만, 백성들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들으려 하지 않는 백성들에게 실망하여 포기하고 돌아서 보지만, 그 결말을 아는 선지자는 답답하고 속에서 열이 나서 견딜 수 없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탄식하며 돌이켜야 할텐데, 그렇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안타까움으로 탄식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애가입니다. 정말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1. 우리 모두의 탄식 – 오늘 본문은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이미 하나님의 징계는 선언되었습니다. 사람의 술법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보내어 물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7절). 이 예언이 현실화 되면 모두 탄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8:18-9:1은 ‘선지자의 탄식-백성들의 탄식-하나님의 탄식-백성들의 탄식-선지자의 탄식’의 구조로 지금 상황이 모두 탄식해야 할 상황임을 나타냅니다. 선지자는 마음이 병들 정도로 슬픔과 근심에 빠집니다(18절). 이제 백성들은 심히 먼 땅에 포로로 끌려가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19a절). 하나님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다고 탄식하십니다(19b절). 백성들은 그제야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한탄합니다.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지만, 구원 얻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20절).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선지자는 백성의 상한 모습을 보고 슬퍼하며 놀라움에 사로잡힙니다(21절). 길르앗의 약이 떨어질 리가 없고, 의사가 없을 리 없는데, 백성은 치료받을 길이 없습니다(22절). 예레미야는 자신의 머리가 우물이고 눈이 눈물의 샘이라면 밤낮으로 울어 백성들의 죽음을 애곡할 것이라고까지 탄식합니다(9장 1절).
2.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 자신이 경고하고 예고한 심판이 임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러한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로 가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2절). 그러나 선지자는 그럴 수 없음을 압니다. 그래서 저들이 왜 이런 심판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핵심은 3절 후반부에 나오는“나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인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부인할 때, 악에 대한 저항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심판의 이유가 됩니다. 나머지 현상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결과입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