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좋아하는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이는 사람을 거의 우상처럼 동경하게 됩니다. 아마추어 입장에서 보면 그 분야 최고의 프로에게는 경외하는 마음까지 갖게 됩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거의 똑같이 부르려고 수없이 연습합니다. 동호회 수준이라도 운동을 하는 사람은 그 종목의 최고 실력을 갖춘 선수에게 최고의 찬탄을 보냅니다.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은 본받고 싶어 하고, 배우고 싶어 하며, 어떤 모습을 보이든 따라 하려고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찬양한다고 하는데, 그리스도를 어느 정도로 좋아하고, 어느 정도로 본받고 배우고 싶어 하나요?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나를 본받고, 내게 배운 바를 행하라”라고 거듭해서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칭찬하고 찬양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본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성도들에게도 자신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닮아가며 본받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무척 매력적이고 멋져 보이지만, 막상 내가 가려고 생각하면 망설여지고 꺼려지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머리로나 말로는 좋다고 칭찬하게 되지만, 막상 내가 그 길로 가려고 하면 용기를 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을 가려면 자기희생과 자기 비움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케노시스(Kenosis)입니다. 바울이 기록한 빌립보서 2장 5-11절을 그리스도 찬가라고 부릅니다. 이 본문의 핵심 주제는 케노시스입니다. 케노시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특권을 내려놓고 인간의 낮고 비천한 자리까지 낮아지신 구속 사역을 나타내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케노시스’는 ‘비우다’라는 뜻의 ‘케노오’에서 나온 말입니다. 2장 7절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는 말씀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케노시스를 알고, 좋아하고, 찬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찬미한 예수님의 케노시스를 바울은 그대로 본받아 따라갔습니다. 바울은 어떻게 그리스도를 본받는 신앙을 실천했을까요?
1. 그리스도의 비움을 본받아 자신의 자랑거리를 비웠습니다. - 바울은 자랑할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완벽에 가까운 스펙(이력)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의 이력서는 다른 사람이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자기 의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다 해로운 것, 심지어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나의 자랑거리를 비우는 것에서 신앙은 시작됩니다.
2.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웠습니다. -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것은 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자기 자랑을 비워낸 이유는 그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깨달은 바울은 그리스도를 지식으로만 채우려 하지 않고, 삶 전체가 연합되기를 원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고난과 죽으심까지도 연합하여 부활과 생명에 이르려 했습니다.
3. 부르심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 바울은 자신을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운 것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지금까지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앞에 보여주신 푯대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라보며 흔들림 없이 달려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