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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도 대비하지 못하지만, 확정적 미래에 대해서도 대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확정적 미래에 대해 준비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당장 그 시급성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날이 이렇게 더운데, 겨울이 올까? 내가 아직 이렇게 젊은데, 나에게 죽음이 올까? 종말이 오겠지만, 지금까지도 주님이 예고하신 종말은 오지 않았는데 정말 종말이 올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확정적 미래와 구분되는 개념이 선택적 개념입니다. 확정적 미래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면, 선택적 미래는 나의 선택이 미래의 결과를 좌우하는 능동적 대처입니다.

곧 오시겠다고 하신 주님이 아직도 안 오셨으니 주님은 안 오실 거야.’가 맞는 생각일까요? 아니면 곧 오시겠다고 하셨으니, 오실 날이 점점 가까워져 온 거야.’가 맞는 생각일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종말이라고 하는 확정적 미래에 대해 좋은 선택으로 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시며,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이 썩 시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그렇죠. 믿음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살면 하나님이 내 인생 책임져 주실 것이라고 믿지만, 실제 삶의 현실에 부딪히면 점점 힘들어지고 위기 상황과 변수가 많은 세상에서 과연 주님만 믿고 살아갈 때, 내가 기대하는 노후를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생기게 됩니다. 주님은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는 제자들에게 시야를 넓혀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미래가 아니라, 영원을 시작하는 그 미래를 잘 준비하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래서 32절에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기적과 능력을 구하기 위해서는 많은 무리들이 나왔지만,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는 자는 소수의 무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무서워 하지 않아도 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런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혼인집에 다녀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혼인집을 다녀왔습니다. 결혼식장에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닷새에서 일주일간의 잔치가 열립니다. 주인이 얼마 동안 참석하고 돌아올지 기약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은 언제라도 주인이 올 수 있다는 심정으로 늘 깨어 주인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주인이 돌아왔을 때, 어떤 종들은 곧 주인에게 문을 열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혹은 주인께 받은 은혜나 호의로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 주인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37절에 보면 다소 의외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주인은 언제 올지 모르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종들을 보면서 친히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그들을 수종 들었다고 했습니다. 종이 해야 할 일은 주인이 하고, 주인이 받아야 할 대접은 주인을 기다린 종들이 받게 됩니다. 주인이 올 시점은 아무도 모릅니다. 마치 도둑이 오는 시간을 아무도 모르기에 도둑을 맞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오심도 그러합니다. 아무도 생각하지 않은 때에 주님은 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늘 깨어 주님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죽음과 주님의 다시 오심은 확정적 미래입니다. 이 확정적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가 우리의 숙제입니다.


명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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