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나에게 최고의 드라마는 단연 “폭싹 속았수다”입니다. 이는 “매우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입니다. 제작자는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을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라고 정했습니다. 이는 미국 철학자 엘버트 하버드가 남긴 ‘삶이 레몬을 주거든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명언에서 레몬을 귤로 변용한 것으로, ‘인생이 레몬(시련)을 주면 긍정적으로 극복해서 레모네이드(좋은걸)를 만들어라’는 의미입니다. 아이유도 제작발표회에서 이 제목에 대해 “인생이 떫은 귤을 던지더라도 그걸로 귤청을 만들어 따뜻한 귤차를 만들어 먹자”라는 뜻을 담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그 시절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난, 아픔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가정이라고 하는 울타리 속에서 인생의 고비마다 닥쳐온 고난을 함께 이겨내고 극복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하여 공개한 드라마이다 보니 공중파에서는 볼 수 없어서 못 보신 분들이 적지 않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본 모든 이들은 적어도 중간중간 훌쩍거렸거나, 심한 경우 어떤 대목에서는 통곡하며 볼 정도로 감동과 재미를 전해준 드라마입니다. 젊은이들은 젊은이들대로 흥미롭게 볼 수 있지만, 드라마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은 드라마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기에 감동과 눈물을 선사해주었습니다.
특히 애순의 남편이며, 금명이의 아버지인 관식(박보검)의 한결같은 가족사랑은 그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감동을 줍니다. 관식은 무쇠처럼 우직하게 아내 애순 곁을 지키고, 딸 금명에게 무한 사랑을 쏟아내며 미련할 정도로 가족을 사랑합니다. 자신의 몸과 삶은 무너져내려도 가족이 행복하고, 가족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합니다. 세상적으로 크게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도 저런 남편, 저런 아버지, 저런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보았을 것입니다. 제가 감동적으로 보았던 장면 몇 장면을 소개합니다.
12화에 보면 인생의 실의에 빠져 일어나기조차 귀찮아하는 딸 금명이를 데리고 배를 타고 나가 일출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딸 금명이와 대화를 이어갑니다. “해 보면 기운이 좋아져. 아빠는 해 보면 좌우지간 빌고 봐. 니들 잘되게 해달라고. 맨날 그냥 빌고 봐.” “해 뜨는 걸 맨날 봐? 맨날 이 시간에 나와 있어? 더 자고 싶지 않아?” “더 안 자고 싶은 놈이 세상에 어딨어?” “근데 뭐 이렇게 혼자 일찍 배를 띄워? 맨날 어떻게 이렇게 살아?” “아빠가 덜 자면 니들이 더 자고 살까 싶어서. 그런데 내 새끼들 더 잘까 싶어서. 그럼 눈 떠져.”라고 합니다.
13화에서 딸의 새 출발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금명아, 아빠 항상 여기 있어. 수틀리면 빠꾸. 아빠한테 냅다 뛰어와” 그리고 사위 충섭에게는 “너는 네가 뭘 받아가는 지 아냐? 내가 너에게 나의 천국을 준다”고 하며 딸에 대한 사랑으로 울먹입니다.
5화에 보면 죽음을 앞둔 애순이 엄마 광례가 시어머니를 찾아와 부탁합니다. 죽을 것을 알고 영정사진을 찍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염치 없는 애 아니니까 때마다 귀찮게 안해요. 살다가 살다가 그 주변머리 없는 게 지 할머니 찾아오거든, 오죽 힘들면 찾아오거든, 한 번만 도와주소. 소죽은 귀신처럼 잘 참는 애가 고달프다고, 할머니 나 고달프다고 한마디 하거든 한규 살리듯 살려줘요. 그러면 다 퉁이지.” 시어머니는 “애순이 나 새끼다. 먼 길 갈 사람이 나 새끼 걱정을 왜해” 광례는 “못 가겄어서 그러지 못 가겄어서...” “아가, 맘 놓고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