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우리 사회를 잘 표현하는 용어 중 하나는 “갈등 사회” 입니다.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세계 최상위권에 이릅니다. 사회 갈등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은 갈등 해소를 위한 공정한 중재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념의 문제에는 누구도, 무엇도 해결자가 되지 못합니다. 정치 지도자도, 종교 지도자도, 학교의 스승도, 부모나 선배도, 갈등의 중재자나 해결자가 되지 못합니다. 한국 행정연구원이 조사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사회통합을 위해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주체”로 정부, 국회, 언론, 기업, 교육계 순으로 나타났는데, 종교단체는 노조 16%보다도 낮은 4%로 응답했습니다. 이미 이 사회는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위한 역할을 함에 있어 종교계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통합을 이루기는커녕 교회 안에서도 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16장 8절에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이라고 한 것을 보면,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당시 바울은 3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에베소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이때, 1장 11절을 보면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식을 글로에의 집에서 온 자들에게 듣습니다. 글로에는 비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위기를 영적 스승인 바울에게 정직하게 알리며 영적 교훈을 받아 해결하고자 하는 건강한 소통자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고린도전서를 기록한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고린도 교회의 곪을 대로 곪은 심각한 문제를 전한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바울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옆에서 지켜볼 때, 답답하고 미련해 보이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미련한 짓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미련해 보였던 것이 실제로는 도리어 실력이 되고, 안전장치가 되고, 능력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분쟁의 문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1. 문제의 발단(누구에게 속하였느냐?) - 교회는 본질적으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베드로)파, 심지어 그리스도파로 나뉘어 갈라졌습니다. 문맥으로 볼 때,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로 모이게 된 것 같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될 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중심은 언제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중심으로 나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사람이 마음에 통하는 사람과 친한 것은 당연하지만, 끼리끼리 모이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2. 문제의 발전(사역자는 어떤 존재인가?) - 오늘날로 말하면 전임 목회자와 후임 목회자 사이에 누가 더 좋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더 좋아하는 사역자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 성장과 교회의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사역자는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세례도 복음을 받아들인 자를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은 목사의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사역의 성공은 나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냄에 있습니다.
3. 문제의 해결(오직 십자가) -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미련한 것입니다. 세상은 성공하고, 힘을 가짐으로, 군림하고 마음대로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대신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랑입니다. 이것이 미련해 보이지만, 여기에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 서야 합니다. 십자가를 거울삼아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비추어보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