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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은 말이지만 여기에 끼리가 붙으면 나쁜 말이 됩니다. 자기 스스로를 가리키는 1인칭 복수 대명사인 우리의 준말은 울로 울타리의 울과 어원이 같습니다. 그래서 짐승을 울타리에 가두어 기르는 곳도 우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공동체성을 가지고 내부적으로 결속시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라는 울타리 속에서 공감대와 연대감을 통해 소속감과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대상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갖게 되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습니다. 우리는 청자(聽者)가 들어가는 포괄적(inclusive) 우리와 청자가 배제된 배타적(exclusive) 우리로 구분됩니다. 그래서 포괄적 이미의 우리는 좋은 말이지만, 배타적 의미의 우리끼리는 나쁜 말이 됩니다. 이렇게 끼리 속에 숨어 있는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이런 함정에 빠진 사람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집중적 훈련받은 제자들도 이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요한이 예수님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우리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와 우리를 따르지 않는 자로 구분해서 우리에 속하지 않는 자는 철저하게 차별하고 배타적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우리라고 하는 공동체만의 특별한 연대감을 강조했을 때,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것을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요한의 의도와 전혀 달랐습니다.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일을 행하고, 예수님을 비방한다는 것은 자기모순, 자가당착에 빠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다면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 그룹에 속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개념을 포괄적 의미로 개방적 개념으로 정의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포괄적 의미의 우리를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설명을 하십니다. 첫째,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이유로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결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둘째, 아직 우리에 들지 않은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연자맷돌을 목에 매어 바다에 던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셋째, 차별과 배타적 태도로 실족하게 할 욕구가 생기면 그것을 찍어버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금의 본질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는 소금의 본질성을 화목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소금은 어떤 재료에든 뿌려지면 스스로를 녹여 스며듭니다. 그래서 소금의 맛을 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들은 소금이 녹아들어 하나가 되듯 서로 화목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끼리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우리의 본질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끼리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를 특권화하고 권력구조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는 변화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니 제자들이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쫓아달라는 요구에 능히 하지 못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하지 못한 일을 누군가 해냈습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우리끼리 문화와 의식을 걷어 내고, 누구나 우리라고 하는 울타리에 들어올 수 있도록 개방성과 포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명륜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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