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인도

by 관리자 posted Feb 2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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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특히 성령의 인도를 어떻게 받을수 있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성령의 인도라는 것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매우 추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령이 무슨 교통경찰처럼 손을 휘저으면서 인도를 하는가?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우리가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슨 특별한 비법을 배워야 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신비한 도를 깨우쳐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는 순종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고, 순종할 뜻이 없으면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순종이란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가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사람이 거듭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나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도 그것이 요구됩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0:31).

순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됩니다. 순종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를 부인해야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만 있으면 성령이 인도하시는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단번의 사건, 즉 일회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마는,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 것은 지속적인 결단입니다. 목회자들이 간과할 수 있는 게 이것입니다. 목회자로서 한번 헌신했다고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살면서 지속적으로 의도적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바울이 아시아로 가려고 했을 때 성령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바울은 자기의 뜻을 고집하지 않고 자기가 하던 일을 멈추고 기다렸습니다. 자신의 계획을 다 내려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랬더니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마게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우라”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하여 바울의 유럽 선교의 대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데에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좌절입니다. 자신이 의도하고 소원하는 것이 잘 안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하여 두 번째 단계로서 좌절에 대한 반응이 따릅니다. 이것은 주로 노력을 더 많이 한다든가 애를 쓴다든가 아니면 기도를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이 해결될 수도 있고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만일 해결되지 않을 경우에 사람은 좀 더 진지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에도 기도를 하기는 했지만 주로 자기 소원을 하나님께 주장하는 기도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로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그 이전에도 말씀하고 계셨습니다만 그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마치 집안에 진공청소기를 크게 틀어놓고 있으면 전화 벨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람의 강렬한 소원이 진공청소기처럼 시끄러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했는데, 청소기를 끄면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성령의 영감을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리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사람은 갈등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씨름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과의 씨름이기도 합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 애굽으로 내려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여러 가지 변명을 대면서 사양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하나님에게 항복하고 순종하기로 하면, 그때부터 갈등이 해결되며 마음에 용기와 평강이 임합니다. 마치 요나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바다에 자신의 운명을 맡겼더니 풍랑이 멈추었던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가 중요합니다. 이때부터 일들이 풀리기 시작합니다. 일이 풀린다는 말은

(1) 과거에 실패했던 똑같은 부분에서 성공하는 것
(2) 내가 나를 도우려 하지 않아도 남이 나를 돕는 것
(3) 전에는 힘쓰고 애써도 안되던 일이 이제는 별로 힘을 쓰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결과가 은혜롭습니다. 나에게도 은혜가 되고 남들에게도 은혜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는 것은 내 일을 경영하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일을 발견하여 거기에 합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 삶은 어디로 가느냐고 반문하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내 공부와 직장을 그만두고 하나님의 일을 찾아 나서라는 말이냐고 물어보실지 모릅니다마는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자기의 생업이 있었고 이삭도 야곱도 자신의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차원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더 복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