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20 신념이 타인을 찌르는 무기가 될 때

by 관리자 posted Sep 19, 202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명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여 오랜만에 넉넉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의외로 안 좋은 경우도 있습니다. 심한 의견 대립으로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감정에 골이 생기며, 아픈 앙금이 남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강한 신념이 상대방을 찌르는 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가족이라고 하는 편안한 관계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를 잃어버리면 도리어 위험한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신앙이라고 하는 믿는 도리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 그 어떤 신념보다도 종교적 신념이 더 강력하게 작동할 것입니다. 믿음의 신념이 믿지 않는 세상과 충돌할 때, 우리는 전도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예수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배타적 진리에 대한 확신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배타주의적 모습이나 독선,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출 수 있습니다.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도, 중요하게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논쟁하며 공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때로는 정치적 신념과 이념이 다르다고 하여 상대방을 판단하여 어느 한쪽으로 낙인찍어 몰아가거나, 정죄하거나 배척하고, 혐오하거나 공격하는 경우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리처드 마우(Richard Mouw)무례한 기독교(Uncommon Decency)라는 책에서 신앙적 확신과 이웃을 향한 시민교양이 분리된 기독교인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신념있는 시민교양(convicted civility)이라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 예의 바른 사람은 신앙적 강한 신념이 없고, 신앙적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타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무례한 모습을 비판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들을 받으라, 비판하지 말라. 업신여기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는 권면을 반복해서 하고 있습니다.

 

1. 나의 신념과 자유보다 형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 확신있는 신앙인일수록 자신의 신념이 타인을 찌르는 무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스스로 믿음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음식을 가리는 것으로 익숙한 것은 이슬람이 할랄푸드라고 부르며 이슬람 율법에 허용된 식품을 먹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유대인들에게도 적합한, 합당한이라는 의미의 코셔 푸드가 있습니다. 특히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가 성전을 모독하여 제우스 신전으로 바꾸고, 돼지를 잡아 제물로 바쳐 성전을 더럽혔던 만행에 거센 분노를 가지

고 있을 때라서 먹는 문제에 더 예민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경건한 삶을 이루기 위한 것이어야지, 타인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2. 날이나 음식에 대한 나의 기준보다 주를 위하는 신앙이 우선이다. - 6절에 보면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먹거나 먹지 않는 자도 다 주를 위하여 하라라고 말씀합니다. 보통 엄격한 자기 기준을 강요하는 사람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나의 판단 목적이 주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3. 심판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준비하라. - 우리는 피고처럼 언젠가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판자의 자리에 올라가 있을 때가 많습니다. 마치 내가 최종 판결권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내 기준으로 판단하여 정죄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최종판결을 최고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악은 몰아댈수록 야수처럼 자라지만, 선은 식물처럼 기다림 속에 자라난다는 글처럼,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 받아주고, 기다려주고, 인내하는 관용이 필요합니다.


Articles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