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제주도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제주도에 갈 때마다 그곳의 독특한 지역 문화를 접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주도 본토 사람들은 제주도 외의 모든 내륙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통틀어 ‘육지 것들’이라고 부릅니다. 과거 척박한 환경과 역사의 아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주도민들이 혈연과 지연으로 강력하게 뭉치는 문화를 형성했는데, 이를 궨당(친척이나 가까운 사람을 뜻하는 제주어)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궨당은 제주도민들에게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문화나 지역 정서로 여길 수 있지만, 육지 것들(?) 입장에서는 뛰어넘기 힘든 거대한 벽과 같은 텃세나 차별처럼 느낍니다. 지역 정서가 강한 곳일수록 타지 사람들에 대한 배타성은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배타성은 비단 특정 지역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에도 아주 견고하고 거대한 영적 궨당이 존재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선민(選民)의식이고, 바리새인들의 특권의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도 유대 사회에 스며들어온 헬라 문화와 로마 제국의 지배라고 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적 순수성을 지키고자 율법과 제사라고 하는 강력한 종교적 울타리를 치고 살았습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자기네들끼리는 거룩하고 의롭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울타리 밖에 있는 사람들은 철저한 외부인이요, 상종조차 해서는 안 될 영적인 ‘육지 것들’로 여겼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영적 텃세를 거룩함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제사드리는데 집중하느라, 울타리 밖에서 상처 입고 신음하는 영혼들을 향한 시선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의 그 견고한 영적 궨당의 벽을 무너뜨리고 울타리 밖에 있는 자들에게 다가가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이방인처럼, 매국노요 죄인처럼 여기며 정죄했던 세리 마태를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영혼으로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제자로 부르시며, 식사 자리를 함께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1. 율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긍휼을 원하시는 주님 –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심하면 침을 뱉기도 했습니다. 상종할 수 없는 죄인이요, 부정한 자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율법이라고 하는 견고한 울타리를 넘어 ‘나를 따르라’라고 하면서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세리를 제자로 삼는다고 하는 것은 두고두고 예수님도 세리와 같은 자라고 비난받을 것을 각오한 것이었습니다.
2. 우리들끼리의 제사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식탁을 원하시는 주님 –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마태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마태와 비슷한 처지의 세리와 죄인들이 모여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호세아서를 인용하여 ‘나는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3. 영광스러운 박물관이 아니라 상처를 싸매는 병원을 원하시는 주님 – 교회는 깨끗하고 완전한 사람들만 전시된 박물관이 아니라, 상처 입고 피 흘리는 이들이 고침받는 영적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떠한가요? 나와 생각과 삶이 다르다고 하여 차별과 혐오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제사보다 긍휼을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