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믿습니다. 또한, 역사의 종말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신앙의 중요한 자세는 ‘기다림’입니다. 성경은 이 기다림의 특징을 적극적 기다림이라 규정합니다. 적극적 기다림이란, 어쩔 수 없이 버티며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소극적 기다림과 달리,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인내하는 기다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내가 필요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고난과 역경도 감내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이 되는 야고보서의 저자는 수신자를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1:1)”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릅니다. 디아스포라의 기원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가 패망하며 포로로 끌려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게 된 것에 기인합니다. 신약에서는 로마의 압제와 기독교에 대한 박해로 흩어져 살고 있는 자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흩어진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종말론적 회복을 소망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사회적 약자로서 온갖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농부, 선지자, 욥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어떤 자세로 주의 강림하심을 기다려야 하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이제 주의 강림하심을 기다리는 신앙이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봅니다.
1. 농부의 길이 참아 기다림을 배우라 – 7절에 보면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길이 참으라”는 말씀은 새번역에서 “참고 견디라”로 번역했습니다. 길이 참으라는 것이 시간의 길이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참고 견디라는 것은 인내하는 과정에서 내적 싸움에서 이겨내라는 것을 강조한 번역입니다. 특히 그 예로 농부의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는 것을 배우라고 말씀합니다. 요즘처럼 관개시설이 확충되지 않던 시절, 우기와 건기가 분명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비는 농사에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는 망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늘만 바라보며 아무 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씨도 뿌리고, 돌도 제거하고, 잡초도 뽑아내고, 해충과 질병을 예방하고, 비료와 농약을 주면서 최선을 다해 기다립니다. 이렇게 소출을 낼 때까지 최선을 다하며 끈기 있게 비를 기다립니다. 우리도 주의 강림이 속히 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2. 선지자의 고난과 오래 참음을 본받으라 – 9절에 보면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기다림의 시간에 범할 수 있는 실수는 원망입니다. 원망은 타인에게 책임이나 잘못을 돌리는 태도입니다. 길이 참고 견뎠는데, 생각한 때에 주님이 오시지 않으면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선지자의 고난과 오래 참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귀를 막고, 반발하며, 도리어 선지자를 핍박하기도 했습니다.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이 세상의 복을 받고, 편안해지고,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고난을 피하지 않고 묵묵히 말씀을 전하며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입니다.
3. 욥의 인내를 배우라 – 욥은 인내의 표본입니다. 욥의 입장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을 연달아 당합니다. 우리가 힘들고 고통 가운데 있다고 해도, 욥처럼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든 가진 것들의 상실, 아내의 외면, 친구들의 정죄, 고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음, 언제까지 고난이 닥쳐야 하는지 알지 못함과 같은 상황에서 욥은 인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