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 언제인지 모르면 항상

by 관리자 posted Nov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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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잠도 자야 하고, 자면서 꿈도 꾸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깨어나야 합니다. 아침에 따뜻한 이불속처럼 포근한 것도 없습니다. 때로는 10분만 더, 5분만, 1분만 더,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은 미련이 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뭉그적거리다 보면 일어나야 할 시간을 놓쳐버려 늦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첫 번째 알람이 울린 후에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가를 계산하면서 다음 알람이 울릴 때까지 이불속 포근함을 즐기곤 합니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 꿈을 꿉니다. 어떤 꿈은 지금이라도 깨어난 것이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로 악몽일 수 있고, 반대로 또 어떤 꿈은 왜 이 중요한 시점에 잠에서 깨어났는지 원망스럽게 느낄 정도로 행복한 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리 생생한 꿈이라 할지라도 꿈은 꿈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꿈에서 본 것을 현실처럼 착각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꿈 깨. 현실로 돌아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꿈과 현실이 반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고 현실로 부딪히는 이 세상은 사실 꿈과 같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마치 꿈속에 있을 때는 그게 현실처럼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잠에서 깨어나고 나면 그제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언젠가는 우리가 현실로 믿고 있는 이 세상이 허상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현실로 믿고 있는 것이 깨어나야 할 허상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42, 43절에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신체적으로 잠에서 깨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실상이라고 믿고 살아가는 것이 진짜가 아님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36절에 보면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합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타이밍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에 대한 상황을 몇 가지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노아의 홍수 비유입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어 구원받은 의로운 사람이기도 하지만, 선지자(벧후 2:5, 11:7)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세상의 죄를 경고하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홍수 심판을 전하고 방주에 오르도록 전한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일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 예고하신 심판은 임하게 되었고, 심판이 시작될 때까지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노아와 그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심판의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두 번째 비유는 함께 밭일하던 사람 비유입니다. 함께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사람은 하나님이 데려가십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 비유는 맷돌질 하는 여인 비유입니다.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맷돌질하는데, 한 사람은 데려가시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는데, 버려둠을 당한 사람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네 번째 비유는 도둑 비유입니다. 현명한 도둑일수록 집주인에 예상치 못한 시간, 방심한 상황에 찾아옵니다.

 

이 비유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눈에 보이는 현실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고 현실 속에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정말 중요한 실상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주님의 날에 대한 예측할 수 없음과 그날에 대한 대응으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대림절을 통해 다시 오실 주님의 날에 대한 불가측성과 우리의 상시 준비신앙을 기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