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主顯節)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탄절이 예수님이 아기 예수의 몸으로 오심을 기념한 절기라면, 주현절은 오신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고 다스리실 분으로 계시됨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주현절 ‘에피파니(epiphany)’는 갑작스럽고 현저한 깨달음의 순간을 의미하기도 하고, ‘드러남, 나타남’이라는 신의 가시적 현현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림절에서 이어진 성탄절은 주현절로 이어져, 부활절을 준비하는 사순절 전까지 계속됩니다. 주현절 역시 주님의 다시 오심을 통해 완성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고린도전서에는 고린도 교회에서 바울에게 질문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편지로 답변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중에 7장은 결혼에 대한 여러 상황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바울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고린도전서 7장에는 주님께 받은 명령과 자기의 의견을 구분해서 밝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는 내가 이 말을 함은 그렇게 해도 좋다는 허락이지 그렇게 하라는 명령은 아니라고 하고, 10절에서는 명하는 자는 명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 주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나의 말이라고 했고, 25절에서는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고, 내가 의견을 말한다고 이야기합니다. 26절에서도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라고 하면서 자기 의견인지 주님의 명령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합니다. 또한, 결혼에 대한 말씀을 시대와 상황을 초월한 일반화된 원리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26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곧 임박한 환난을 전제로 하여 결혼에 대해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29절 말씀처럼 그 때가 단축하여졌다는 것과 31절 말씀처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는 것입니다. 그때가 단축하여졌다는 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의 날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것인데,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라는 말씀처럼 모두 지나가고 사라지는 세상에 집착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에 집착하듯 붙잡고 살아가기 쉽습니다. 그때가 단축하여졌음을 아는 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는 어떠한 것일까요?
1.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라 –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나 종말의 때에는 가정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라 – 고난 중에 있어도 슬픔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고, 천국의 소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라 – 주님의 오심이 가까워오면 세상 즐거움과 쾌락에 빠져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즐거움과 위로를 찾기보다 주님의 위로와 은혜를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4.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라 – 사고파는 것으로 소유를 늘려가는 것에 집착하면 정말 중요한 초대받은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거부할 수 있습니다(눅 14:18-19).
5.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 필요해서 갖는 것이 아니라, 과시와 욕심을 위해 가지려는 자는 다 쓰지 못할 것을 알고 절제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지만, 이것이 전부인 것처럼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