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충분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 성차별이나 인종차별 등의 이유로 고위직을 맡지 못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경제학 용어입니다. 유리천장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암묵적인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보이지 않는 담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환영하며 웰컴을 외치지만, 어느 이상 들어가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무엇엔가 가로막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담은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며 안전한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세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마음이나 미움과 차별로 담을 쌓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세운 담은 스스로 고립되게 만듭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같은 기술을 가지고도 중국은 성을 쌓고 로마는 길을 닦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길은 왕래를 촉진하고 번성할 때는 세계로 뻗어 나가는 촉진제 역할을 하지만, 반대로 적들이 침공할 때는 똑같은 이유로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세계로 연결하는 길을 내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유명한 말이 나오게 됩니다. 반대로 성을 쌓는 것은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며 자긍심을 심어주기도 하지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사상으로 고립되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과도한 세금을 거두고 강제 노역을 동원하여 만리장성을 쌓으며 오랑캐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자유자재로 만리장성을 넘나드는 오랑캐로 불리던 민족에게 지배를 당하는 역사를 갖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방인이나 죄인들과는 다르다 하여 스스로를 구별된 자로 여기며 담을 쌓고 성을 세웠습니다. 자기네만 거룩한 사람이고 나머지는 죄인이 되어 버립니다. 성전 역시 이방인의 뜰, 여인들의 뜰, 이스라엘의 뜰과 같이 차단된 벽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은 보이지 않는 담을 허물고, 복음의 길을 닦았습니다.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는 모두 헬라파 유대인으로 세워졌고, 안디옥교회는 정통파 유대인(바나바)으로부터 흑인 노예 출신(시므온), 무명의 이방인(루기오), 유대인의 대적자(마나엔), 심지어 한때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자(바울)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가 된 교회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과거 현재를 조명하며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교회가 세워져야 할지 교훈합니다. 그 때에(2절), 전에는(3절), 그 때에(11절), 그 때에(12절), 이렇게 과거에 우리가 어떤 처지였는가를 상기시킵니다. 전에는 우리도 은혜에 들어갈 수 없는 처지였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제는(13절)이라고 하면서 달라진 처지를 설명합니다. 이제는 차별의 담을 허물고 은혜 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핵심적인 역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이제부터(19절)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도 담을 허물고 하나가 되게 하는 사명을 이루어야 함을 말씀합니다. 자신의 육체가 찢기고 십자가 피흘림으로 담을 허물고 하나가 되게 하신 주님처럼 평화를 만들고 담을 허무는 자가 됩시다.